[행복의 조건] 타인의 행복서 나의 행복 찾는 한용외 인클로버재…
글쓴이 : 인클로버    작성일 : 15-11-10 11:25본문
일자 : 2013년 2월 7일 (목)
보도기관 : 한국경제매거진
[행복의 조건] 타인의 행복서 나의 행복 찾는 한용외 인클로버재단 이사장 “아무리 작은 것도 나눠주면 행복해요”
한용외(66) 인클로버(In Clover) 재단(사회복지법인) 이사장은 삼성전자 사장 출신이다. 인클로버는 한 이사장이 직접 지은 이름으로 ‘행복한 세상 속으로’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다문화 가정을 지원하는 일을 주로 한다.
한 이사장이 몸담았던 삼성전자는 세계적인 기업이다. 그곳에서 사원으로 입사해 사장에까지 올랐다는 것은 산악인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에 오른 것이나 마찬가지다. 주변에서 “당신은 참 행복한 사람이야”라는 말을 숱하게 들었을 터다.
하지만 지위가 높을수록 물러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타의에 의해 은퇴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1~2년간 정신적 외상에 시달린다고 고백한다. 대부분 그렇게 혹독한 후유증을 겪은 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친구들과 만나 골프도 하고 가족들과 여행도 즐기면서 편안한 여생을 꿈꾼다. 그렇지만 한 이사장은 달랐다.
그의 표현대로 후유증에 시달릴 시간도 없었다. 또 다른 목표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를 그만두자마자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더니 사재 10억 원을 털어 사회복지재단까지 세웠다. 몸으로 하는 봉사 활동에도 적극 나서 “몸과 마음이 지칠 정도”로 뛰어다녔다. 전국을 돌며 다문화 가정의 가족사진을 찍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난 행복한 사람”이라며 콧노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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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은 모든 사람들의 꿈이지만 그 꿈을 이룬 이들은 많지 않다. 행복은 재산이 많거나 높은 관직에 올랐다고 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물론 제3자로부터 “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들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행복한 사람으로 공인한다. 그래서 행복하기가 쉽지 않다. 인생은 만만하지 않은 법이다.
이는 젊으나 늙으나 느끼는 점이다. 대부분 평범하게 이런저런 풍파에 시달리며 늙어간다.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파이고 무릎 연골이 닳아 걷기도 힘든 상황이 될 때 비로소 인생을 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따라서 요즘 그가 말하는 ‘행복’과 삼성전자 사장 시절의 ‘행복’은 차원이 다를 것이다. 그 ‘다름’이 궁금해 서울 잠실의 인클로버재단 사무실을 방문했다.
“내가 (사람들에게 행복에 대해 이야기할 만한) 자격이 될까.” 한 이사장은 기자를 만나자마자 걱정부터 했다. ‘지금 행복하지 않으세요’라고 되물었더니 “행복하게 살고 있죠”라고 답했다. 행복을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국어사전엔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를 뜻한다고 나와 있다. 한 이사장에게 행복은 뭘까.
그는 “가치관의 문제로, 내가 행복하고 주변이 행복하고 제3자가 행복해야 완결된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고 정의했다. 그는 “내가 행복하다는 것은 자기 성취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자기 성취를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그 행복의 두께가 더해지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가 모르는 3자에게도 전해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이다.
그가 봉사로부터 행복을 찾게 된 배경은 삼성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93년 신경영을 선언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당시 비서실 인력을 대거 교체했다. 비서실 감사팀에서 근무하던 그도 삼성SDS로 옮겼지만 발령난지 한 달 만에 삼성문화재단 전무로 다시 발령 받는다. 그가 맡은 역할은 삼성그룹에서 운용하는 문화재단·복지재단·공익재단 등을 총괄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사회 공헌 사업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삼성에서 ‘자원봉사’를 처음으로 도입했고 이전까지 미개척지였던 문화 분야에서의 사회 공헌 활동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삼성전자 생활가전 사장으로 현업에 복귀했다가 2004년 다시 삼성재단 총괄사장으로 부임하면서 사회 공헌 사업을 주도했고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삼성사회봉사단 사장으로 삼성그룹의 봉사 활동을 선두에서 이끌었다.
다문화 가정 지원 활동에 주력
다문화 가정 지원에 관심을 가진 것도 삼성사회봉사단장 시절 그 중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2007년 지방 행사에 내려갔다가 산등성이마다 내걸린 플래카드를 보고 충격을 받게 된다. 지자체 단체장 이름으로 내걸린 플래카드의 ‘농촌 총각 결혼시켜 드립니다’는 내용을 보고 “아 정말 큰일 났다” 싶었단다. 그는 “순혈주의가 강한 나라에서 혼혈 아이들이 학교에서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은 뻔하고 결국 왕따 문제 등으로 정체성 고민을 하는 아이들이 사회의 어두운 구석으로 내몰리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회고했다.
한 이사장은 “5~10년 뒤에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해질 문제가 뭔가 생각해 봤더니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떠올랐다”며 “실제로 다문화 가정의 이혼율이 30%가 넘고 일부 지역에선 취학 연령의 다문화 아동·청소년 63%가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는 통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클로버재단은 10억 원의 이자 수익으로 운영된다. 예산이 적어 다문화 가정 도서 전달, 학술 지원 등 소규모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책 보내기 운동을 했고 다문화 가정의 건강한 자립을 격려하기 위한 생활 수기 공모전도 진행했다.
또한 기부자들이 자신의 재능을 살려 직접 참여하는 사업도 벌이고 있다. 다문화 가족 사진 촬영 행사나 청소년 사진 교육 같은 프로그램 등이 그것이다. 그는 유명 사진작가인 조세현 씨에게 사진을 배워 수차례 전시회를 연 수준급의 사진작가다.
지난 2년 6개월간 한 달에 2회씩 총 1188가족의 사진을 찍어 액자로 만들어 선물했다. 한 이사장은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성장해 직업을 갖게 되면 스포츠 선수, 사진 전문가, 요리사, 직업군인 등 적성에 맞는 직업도 많다”며 “이들이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내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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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사회 공헌 전문가인 한 이사장의 ‘봉사론’을 들어보지 않을 수 없다. ‘봉사를 하면 좋은 점이 뭐냐’고 물었더니 “즐거움”이라고 답했다. “뭐가 즐거우냐”고 재차 물었더니 “봉사를 받는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그들이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즐겁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 이사장만의 봉사 원칙도 소개할 만하다.
그는 “시간이 있는 만큼, 아는 만큼, 재산이 있는 만큼 하면 된다”고 말했다. 다만 직접적으로 돈으로만 지원하는 것은 좋지않은 방법이다. 경제적 지원은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쟁하는 방법도 가르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흔히 경쟁이란 행복과는 거리가 먼 단어로 통한다. 그러나 그는 행복과 경쟁의 상관관계에 대해 “경쟁 없이는 발전이 없고 발전 없는 행복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남을 무너뜨리거나 해치는 경쟁이 아니라 정당한 경쟁이어야 한다”고 못 박았다.
한 이사장은 후배들이 자신의 성취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결코 행복의 길이 아니라고 조언했다. 그는 “잘 살아가는 방법이 어떤 것이지 생각해 봐야 한다”며 “선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 행복은 찾아오지 않는다”라며 “100만 원을 벌어서 10만 원을 남을 위해 쓰겠다는 마음으로 살면 행복이 스며든다”고 말했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른 뒤 이렇게 부탁했다. “바로 실천하라!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한 이사장의 향후 계획은 별다른 게 없다. “지금처럼 내가 접촉하고 피부로 느끼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죽을 때까지 공부하고 가르쳐 주고 도와주는 삶을 살 겁니다.” 한 이사장은 잘 웃는 사람이다. 기자가 던진 작은 유머에도 껄껄 웃어 제낀다. 그 웃음을 보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